계속해보겠습니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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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사랑 이야기에는 이런 순간들이 있지 않을까?
자신의 생각이 반영되기를 기대하면서 상대의 눈을 찾지만,
결국은 [희비극적인] 불일치로 끝나버리는 순간 ― 그것이 계급투쟁의 문제이건, 구두 한 켤레의 문제이건.
* 어떤 사람들은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면 절대로 사랑에 빠지지 않았을 것이다.
- 라 로슈푸코(La Rochefoucauld, 1613-80, 프랑스의 작가, 모럴리스트)
* 사람이란 절대 그 자체로 선하거나 악하지 않다.
이것은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나 미워하는 바탕에는 주관적이고, 또 어쩌면 환상적인 요소가 있을 수 밖에 없다는 뜻이다.
* 윌은 신중하게도 클로이가 어떤 사람이냐고 묻지 않고, 더 정확하게 내가 그녀에게서 무엇을 보느냐고 물었다.
* 오아시스 콤플렉스에서는 목마른 사람이 물, 야자나무, 그늘을 본다고 상상한다.
그런 믿음의 증거가 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 자신에게 그런 믿음에 대한 요구가 있기 때문이다.
간절한 요구는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환각을 낳는다.
* 의학사를 보면 자신이 달걀 프라이라는 이상한 망상에 빠져서 살아가는 사람의 사례가 나온다. 그가 언제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찢어질까봐" 아니면 "노른자가 흘러나올까봐" 어디에도 앉을 수가 없게 되었다. 의사는 그의 공포를 가라앉히기 위해서 진정제 등 온갖 약을 주었으나 소용이 없었다. 마침내 어떤 의사가 미망에 사로잡힌 환자의 정신 속으로 들어가서 늘 토스트를 한 조각 가지고 다니라고 제안했다. 그렇게 하면 앉고 싶은 의자 위에 토스트를 올려놓고 앉을 수가 있고, 노른자가 샐 걱정을 할 필요도 없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그때부터 이 환자는 늘 토스트 한 조각을 가지고 다녔으며, 대체로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었다.
이 이야기의 요점이 무엇일까? 이 이야기는 사람이 미망[사랑, 자신이 달걀이라는 믿음]에 빠져서 살 수도 있지만, 그것을 보완해주는 것[비슷한 미망에 빠져 있는 클로이와 같은 연인, 토스트 한 조각]을 찾아내면 모든 일이 잘 될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미망은 그 자체가 해로운 것이 아니다. 혼자서만 그것을 믿을 때, 그것을 유지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지 못할 때만 해가 된다. 클로이와 내가 사랑의 노른자위를 말짱하게 보존만 할 수 있다면, 진실이 무엇이든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우리 자신에 대한 느낌은 달라진다. 우리는 조금씩 남들이 우리라고 생각하는 존재가 되기 때문이다.
자아는 아메바에 비유할 수 있다. 아메바의 외벽은 탄력이 있어서 환경에 적응한다.
그렇다고 아메바에게 크기가 없다는 말은 아니다. 단지 자기 규정적인 형태가 없을 뿐이다.
* 성숙이란 모든 사람에게 그들이 받을 만한 것을 받을 만한 때에 주는 능력이라고 표현할 수도 잇겠다.
또 자신에게 속하고 또 거기서 끝내야 할 감정과 나중에 나타난 죄 없는 사람이 아니라
감정을 촉발시킨 사람에게 즉시 표현해야 할 감정을 구분하는 능력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우리는 성숙하게 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 나는 또 클로이를 사랑하느냐 사랑하지 않느냐에 대한 확실한 이유들을 찾아내는 감당하기 힘든 문제에 직면하기도 했다.
객관적으로 보자면 어느 쪽으로든 어쩔 수 없는 이유는 없으며,
이것이 그녀를 향하여 이따금씩 나타나는 나의 양면 공존을 더욱 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로 만들었다.
사랑하거나 미워할 확실하고 논박의 여지 없는 이유들이 있다면, 의지할 만한 기준도 있는 셈이었다.
* 헌신을 한 판의 달걀이라고 본다면,
현재에 헌신하는 것에는 달걀을 과가와 미래의 바구니에 나누에 담지 않고 모두 현재의 바구니에 담는 위험이 있다.
이 비유를 사랑으로 옮긴다면, 내가 클로이와 행복하다는 사실을 마침내 인정하는 것은 위험에도 불구하고
내 모든 달걀이 그녀의 바구니 안에 확실하게 들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는 뜻이다.
* 나는 내가 믿는 대로 일을 하라고 배웠거든. 내가 진짜라고 느끼는 집을 지어놓으면, 거기 사는 사람들도 집에서 에너지 같은 것을 얻게 되지.
* 비록 내 사랑에 희생이 포함되었다고 해도, 나는 그렇게 하는 것이 행복했기 때문에 그녀를 사랑했을 뿐이다.
나는 순교를 한 것이 아니다. 나는 의무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렇게 하는 것이 내 경향에 완벽하게 들어맞았기 때문에 그렇게 행동했을 뿐이다.
* 클로이와 보낸 시간은 주름이 잡히며 폭이 좁아졌다. 수축하는 아코디언 같았다.
…… 몇몇 교황이나 군주나 전투로 축소되고 상징되는 한 세기처럼,
나의 연애는 정제되어 몇 개의 아이콘적 요소[역사가들이 고르는 요소들보다는 무작위적이지만 마찬가지로 선택적인]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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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시작부터 끝, 그리고 새로운 사랑의 시작까지의 이야기를 철학적으로 풀어낸 알랭 드 보통의 소설.
알랭 드 보통의 에세이가 아닌 소설은 처음으로 읽었는데 무척 공감하며 읽었다.
사랑은 제각각 독특해서 일반화하기는 힘들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이 책을 읽고 나니 '어느 정도는 이렇게 패턴화 할 수도 있는걸까' 하는 생각이 들어버렸다.
전 세계 수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며 읽었다고 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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