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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본문

Book Reviews

miao 2016. 10. 9. 17:31
국내도서
저자 : 한강
출판 : 난다 2016.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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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흰 것에 대해 쓰겠다고 결심한 봄에 내가 처음 한 일은 목록을 만드는 것이었다.


* 활로 철현을 켜면 슬프거나 기이하거나 새된 소리가 나는 것처럼, 

  이 단어들로 심장을 문지르면 어떤 문장들이건 흘러나올 것이다. 

  그 문장들 사이에 흰 거즈를 덮고 숨어도 괜찮은 걸까. 


* 죽지마. 죽지 마라 제발. 

  그 말이 그녀의 몸속에 부적으로 새겨져 있으므로.


* 외투를 꺼내 입은 남자들과 여자들의 뒷모습에, 무엇인가 견디기 시작한 사람들의 묵묵한 예감이 배어 있다.


* 물과 물이 만나는 경계에 서서 마치 영원히 반복될 것 같은 파도의 움직임을 지켜보는 동안

  (그러나 실은 영원하지 않다―지구도 태양계도 언젠가 사라지니까), 

  우리 삶이 찰나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또렷하게 만져진다. 


* 새로 빨아 바싹 말린 흰 배갯잇과 이불보가 무엇인가를 말하는 것 같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거기 그녀의 맨살이 닿을 때, 순면의 흰 천이 무슨 말을 건네는 것 같다. 

  당신은 귀한 사람이라고. 당신의 잠은 깨끗하고 당신이 살아 있다는 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고. 

  잠과 생시 사이에서 바스락거리는 순면의 침대보에 맨살이 닿을 때 그녀는 그렇게 이상한 위로를 받는다. 


* 그리고 그녀는 자주 잊었다, 

  우리의 몸이(우리 모두의 몸이) 모래의 집이란 걸.

  부스러져왔으며 부스러지고 있다는 걸.

  끈질기게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고 있다는 걸.


* 아무런 고통도 겪지 않은 사람처럼 그녀는 책상 앞에 앉아 있다.

  방금 울었거나 곧 울게 될 사람이 아닌 것처럼.  

  부셔져본 적 없는 사람처럼.

  영원을 우리가 가질 수 없다는 사실만이 위안이 되었던 시간 따위는 없었던 것처럼.


* 자신을 버린 적 있는 사람을 무람없이 다시 사랑할 수 없는 것처럼, 

  그녀가 삶을 다시 사랑하는 일은 그때마다 길고 복잡한 과정을 필요로 했다. 


  왜냐하면, 당신은 언젠가 반드시 나를 버릴 테니까.

  내가 가장 약하고 도움이 필요할 때, 

  돌이킬 수 없이 서늘하게 등을 돌릴 테니까.

  그걸 나는 투명하게 알고 있으니까.

  그걸 알기 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으니까. 


* 사라질―사라지고 있는―아름다움을 통과했다. 묵묵히.


* 그것들에게 돌아서기 전에 그녀는 묻는다. 

  더 나아가고 싶은가. 

  그럴 가치가 있는가. 


  그렇지 않다, 라고 떨면서 스스로에게 답했던 때가 있었다.


* 만일 삶이 직선으로 뻗어 있는 것이 아니라면, 어느 사이 그녀는 굽이진 모퉁이를 돌아간 자신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문득 뒤돌아본다 해도 그동안 자신이 겪은 어떤 것도 한눈에 보이지 않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 




아주 어린 시절 

가족 또는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통해 '죽음'을 접한 사람들은 

그 그림자를 평생 끌고 살아갈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어릴 적 누이를 잃은 기형도의 글이 그렇고, 

자신이 태어나기 전 죽은 언니 이야기를 듣고 자란 한강의 글이 그렇다. 

나의 이유 없는 우울함도 그 끝을 쫓다보면

기억나지 않는 아빠의 죽음, 아빠의 부재와 관련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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